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RIDE ON TIME (문단 편집) == 작업 배경 == "[[MOONGLOW]]" 작업 당시였던 79년, 오르간 연주자 돈 루이스의 일본공연에 참가했던 [[요시다 미나코]]에게서 같이 참가한 22살의 드러머 아오야마 준[* 青山純(1957~2013). 90년대 후반까지 야마시타 타츠로의 백 밴드에서 활동했다. 그의 사망 이후 야마시타 타츠로는 본인이 진행하는 라디오 방송에서 사망하기 10년 전쯤부터 몸이 좋지 않아 3시간 이상을 소화해야 하는 자신의 라이브에서 체력적으로 무리가 따라 교체할 수밖에 없었다고 이야기하였다. 그의 두 아들 중 장남은 [[BABYMETAL]]의 세션으로 유명한 [[아오야마 히데키]], 차남은 [[nano.RIPE]]의 전 멤버였던 드러머 아오야마 유우키이다. 아오야마 유우키는 2018년 급성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을 소개받는다. 아오야마는 사토 히로시[* 역시 야마시타 타츠로의 레코딩 작업에 많이 참여한 인물이다.]와, 그가 소속해 있었던 밴드 그루브 하이 타임즈의 멤버였던 베이시스트 이토 코키(伊藤広規)와 함께 야마시타 타츠로의 백 밴드의 오디션을 겸한 세션 참가를 하게 되었고, 당시 '어쨌든 이 노래 먼저 해보자.'라며 야마시타가 건네준 첫 악보는 'ついておいで'라는 악보였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아오야마는 그 곡을 알고 있었고, 좋아하는 드럼 패턴이어서 연주를 시작했다. 이제 끝났나 싶었을 때까지도 계속 악보를 넘겨주어서 곤란했으나 받은 악보들이 대부분 이토와 같이 연주할 수 있는 곡들이어서 다행이었다고 한다. 받은 악보 중에는 6/8박자의 거의 락만 해온 드러머에게는 무리에 가까운 발라드 곡도 있었는데, 아오야마는 (경험상)짬밥이 안됐던 자신들에게 분명히 힘든 거 시켜보려고 한 것이지, 야마시타 타츠로도 별 기대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그런 류의 음악을 좋아하고 있었고, 발라드 연주 경험은 부족했지만 두 사람 다 별다른 거부감 없이 연주를 끝냈다고 한다. 직후 야마시타가 '너, 아오야마라고 그랬나? 나이가 어떻게 되지?'라고 물었을 때 아오야마는 '22살인데, 왜요? 맘에 안 드세요?'라고 대답했는데, '어째 이런 노래 처음 치는 것 치곤 잘 치는데? 그 나이에 대단한데?'라는 칭찬을 해줬다고 한다. 잡다한 패턴이 담긴 곡을 연주하고 싶은 작가주의 성향이 강한 야마시타에게 이때까지는 수많은 뮤지션과 연주해오면서 곡조에 맞춰서 세션을 적당히 써먹었다. 스튜디오에서는 그렇게 해도 충분했어도 라이브 스테이지에서는 멤버 선정에 따라 연주할 수 없는 곡도 나왔지만, 그런 점에서 어떤 스타일이든 자신을 만족시킬만한 수준으로 끌어올려준 첫 콤비가 아오야마와 이토 콤비였다. 그들과의 만남으로 인해 라이브에서 연주할 수 있는 레퍼토리가 대폭 늘어나, [[슈가 베이브]] 이후 자신이 그려온 라이브의 청사진이 처음으로 현실화될 거란 예상을 하게되고, 결국 그 오디션같은 세션이 한번 진행된 후 그 다음부터는 스테이지에서 연주하기 위한 리허설에 들어갔다. 79년 후반에 들어서면서 그들은 라이브의 정식 멤버가 되었고, 이듬해 초에 레코딩 멤버가 되었다. 이렇게 해서 아오야마와 이토 콤비가 [[GO AHEAD!]] 시절부터 멤버였던 난바와 시이나에게 합류하면서, 어떻게든 라이브와 레코딩이 둘 다 가능한 정예멤버들이 꾸려졌고, 이 시기부터 연습 스튜디오에서 연습을 해서 맞춰보고, 그 멤버 그대로 레코딩 스튜디오로 그걸 가져가 레코딩을 하는 식으로 고정되다 보니 여러가지 리듬 패턴을 실험해 작곡에 써먹게 되었고, 이런 방법은 집에서 혼자 생각한 그동안의 방식에서 이제껏 생각하지 못했던 아이디어를 더 많이 만들어냈다. 그 시기 [[MOONGLOW]]의 롱 셀러에 입가에 미소가 번졌던 디렉터 코스기는 이제 승부를 봐야할 때라며, 야마시타 자신이 TV CM에 나오는 기획에 타이업[* 그것이 [[https://youtu.be/uXb00WMpjUQ|Maxell의 카세트 테이프 CM]]인듯 하다. 화산같은 곳하고 바다에서 찍은 버전이 있다. 이 앨범의 LP 초판을 사면 maxell 광고 촬영당시의 스틸사진 커버를 끼워줬다. 현재 중고 매물로 나와있는 이 앨범의 LP판들 중에 저 maxell 광고의 스틸사진이 붙어있으면 초판이란 얘기.]이 되었고, CM작곡가로서 어느 정도 커리어를 쌓아왔던 그에게 있어 코스기가 가져온 프로젝트의 카피라이터, 감독, 광고대행사의 프로듀서 모두 오래 전 부터 면식이 있어서, 그 점을 잘 파고들어 오퍼를 컨펌시켰다. 그렇게 해서 나온 싱글 RIDE ON TIME은 야마시타에게 있어 첫 히트곡이었다. 싱글이 히트치면서 그 분위기에 힘입어 제작을 시작한 이 앨범은, 음악적인 노선은 전작 [[MOONGLOW]]의 연장선이면서도 가장 큰 변화는 제작예산이었는데, 히트곡이 나와 매출이 오른 관계로 평소에 야마시타는 스튜디오 비용을 마음껏 쓰면서 다른 테이크와 편곡을 할 수 있는 게 꿈이었는데, 이 때 그것이 현실화되었고, 그래서 그 시기에 몇년 전과는 다른 곡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 반면 RIDE ON TIME의 히트 후[* 야마시타 타츠로 커리어 최초로 오리콘 차트 10위권 안에 들어간 곡이 이 곡이다.]에 여러 방송의 잔혹함을 엿보게 되어, 그 반감으로 주변 분위기에 흔들리지 않고 평론가나 매니아에게 제대로 평가받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작용했다고 한다. 그 결과 발매된 작품에 대해 당시 가까운 관계자조차도 '별로다.'라는 등 혹평일색이었지만, 지금 와서보면 그런 제작방침이 결국엔 정확했다고 절실히 느낀다고 한다. 야마시타의 뮤지션 커리어에 있어 행운은 더 큰 음악적, 상업적 전환기에 한창 상한가를 치고 있는 뮤지션과의 만남과 그들과의 좋은 커뮤니케이션 속에서 레코딩과 라이브를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